인간극장, 우리 주변에는 오랜 시간 한길을 걸으며 가족의 삶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다. 충남 공주 계룡산 자락의 한 식당도 그런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매일 새벽이면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직접 도토리묵을 만들어 온 아버지와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아들의 후계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도토리묵 장인 허재성 씨와 장남 혁진 씨다. 아버지는 23년 동안 한결같이 묵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왔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손맛과 철학을 이어받기 위해 배우는 중이다.
하지만 전통의 맛을 계승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들이 1년 가까이 묵 만드는 과정을 익혀 왔음에도 아버지는 쉽게 합격점을 주지 않는다. 작은 차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적하며 더 나은 결과를 요구한다.

재성 씨에게 도토리묵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IMF 외환위기 당시 사업 실패를 겪으며 가족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후 고향인 공주의 산골 마을로 내려와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했다.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그 시절, 가족에게 희망을 안겨준 것이 바로 도토리묵이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 앞을 지키며 묵을 쑤었던 시간들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다섯 아들을 키우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삶의 기록이었다.

묵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흘린 땀과 정성은 곧 가족을 향한 사랑이었고, 오랜 세월 쌓인 경험은 지금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재성 씨는 언젠가 자신의 손맛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다섯 아들은 각자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섰다.
주얼리 세공사, 영화감독, 배우, 래퍼, 복싱 코치까지 형제들은 저마다 개성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의 묵이 대를 이어 계속 만들어질 수 있을지 걱정하기도 했다.

변화의 계기는 예상치 못한 사고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지붕 작업 중 추락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친 아버지를 보며 장남 혁진 씨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평생 가족을 위해 지켜온 아버지의 기술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자신이 하던 주얼리 세공 일을 뒤로하고 아버지의 곁에서 묵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현재 혁진 씨는 서울과 공주를 오가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특히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부부이기에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다.
그럼에도 아내 설희 씨는 남편의 선택을 이해하며 응원하고 있다. 단순히 가업을 잇는 것을 넘어 가족의 역사와 추억까지 함께 이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혁진 씨 역시 단순히 아버지의 기술을 복제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먹고 자란 도토리묵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언젠가는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새로운 묵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전통을 배우고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고민하는 것이다.

도토리묵은 오랜 시간 끓이고 끊임없이 저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춘다. 조금만 방심해도 원하는 식감과 맛을 얻을 수 없다. 어쩌면 가족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 수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견디며 서로를 붙들고 살아왔기에 지금의 단단한 가족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번 인간극장 ‘아들아 묵을 쑤어라’는 단순한 가업 승계 이야기가 아니다. 한 그릇의 음식에 담긴 가족의 역사와 부모의 희생, 그리고 그것을 이어가려는 아들의 책임감이 담긴 이야기다.

오랜 세월 묵을 만들며 가족을 지켜온 아버지와 그 길을 함께 걷기로 한 아들의 모습을 통해 전통의 가치와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따뜻한 시간을 선사한다.
<계룡산묵사랑>
충남 공주시 전진배길 389
041-857-4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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