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행에서는 경남 하동의 깊은 산골에서 오랜 시간 전통 수제 차를 만들어온 한 가족의 이야기를 전했다. 해발 700m에 자리한 차밭은 아침 안개가 천천히 걷히며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풍경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곳이다.

이곳에서 6대째 전통 차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는 황인수 씨와 아내 임이수영 씨 부부다. 어린 시절부터 차밭을 오르내리며 몸으로 익혀온 손맛과 경험은 세월만큼 깊은 향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동은 예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녹차 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산지 특유의 큰 일교차와 맑은 공기,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향이 진하고 부드러운 차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좋은 찻잎이 난다고 해서 누구나 같은 맛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찻잎을 언제 따야 하는지, 어느 정도로 덖어야 하는지, 손으로 비비는 힘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까지 모두 오랜 경험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부부는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어린 찻잎 상태를 살핀다. 1년에 단 두 달 정도만 채취할 수 있는 봄 찻잎은 그만큼 귀하고 가치가 높다. 특히 4월에 올라오는 가장 여린 잎은 맛과 향이 뛰어나 예로부터 최고급 차로 여겨졌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는 찻잎 채취는 생각보다 훨씬 고된 작업이지만, 부부는 한 잎 한 잎 정성을 다해 손으로 직접 따낸다.


이 차밭에는 또 다른 특별한 식구들도 있다. 바로 매년 봄이면 어김없이 차밭으로 모여드는 할머니들이다. 모두 여든을 훌쩍 넘긴 연세지만 찻잎을 따는 손놀림만큼은 여전히 능숙하다.

30년 넘게 같은 길을 오르내리며 함께 시간을 보내온 이들은 이제 단순한 일손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챙기는 가족 같은 존재가 되었다. 차를 따는 동안 이어지는 웃음소리와 정겨운 사투리에는 긴 세월 함께한 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곳의 차는 대부분의 과정을 손으로 직접 만든다. 갓 딴 찻잎을 무쇠 가마솥에서 덖고, 손으로 여러 번 비벼 모양을 잡은 뒤 천천히 말리는 과정까지 모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기계로 대량 생산하는 방식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그렇게 해야만 전통 수제 차 특유의 깊은 향과 부드러운 맛이 살아난다고 한다.

정성껏 완성된 올해 첫 녹차는 하동의 칠불사에 공양된다. 차를 올리며 한 해 차밭의 풍년과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모습에서는 단순한 농사가 아닌 삶의 철학까지 느껴졌다. 오랜 세월 이어져온 전통과 사람 사이의 정, 그리고 자연을 향한 감사가 차 한 잔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이번 한국기행은 단순히 차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세대를 이어온 전통,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의 인연, 그리고 손으로 지켜낸 삶의 가치가 얼마나 깊은 울림을 남기는지를 보여준 이야기였다.
<청석골감로다원>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모암길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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